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0년 KBS 사태 (문단 편집) == 여담 == 재야 현대사학자 임영태는 해당 파업에 대해 방송인들의 의식구조를 변화시켰다고 해석했다. 5공 시절 언론인들은 권력에 굴종하며 높은 보수와 사회적 지위를 누려왔지만, KBS 파업 당시 이들에게도 공권력이 가차없이 폭력을 가함으로써 그때의 특권은 상대적인 것이었다고 깨달은 것이다. 그는 이 상황으로 볼 때, 방송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하지 않으면 국민들의 진정한 스타는 될 수 없었던 것이라고 견해를 피력했다. 당시 [[이계진]] 아나운서도 파업에 참여하였다. 한편, 당시 이번 사태로 당시 [[코스피]]지수는 대 폭락했다. 특히, 1990년 4월 26일은 28.96포인트, 3.83%의 폭락한 726.11포인트로 기록했는데, 이는 1990년도 당시 최대 하락폭 및 하락률을 기록했다. 당시 전 업종이 하락했으며, 오른 종목[* 실제로는 하락종목이 743개, 보합이 20개이다.]은 하나도 없는 날이 되었다. 한편, KBS 사태 당시 대하드라마 <[[역사는 흐른다]]>를 비롯해 <[[TV 손자병법]]>, <[[울밑에선 봉선화]]>, <[[파천무]]>, <겨울나그네> 등 각종 드라마들이 잠정 중단되었으며, 특히 <역사는 흐른다>는 한달여 전 2부로 돌입했으나 파업 때문에 3주 간 맥빠진 적 있었다. 새로 방영하려던 <꽃피고 새울면>과 <아내의 뜰>은 스튜디오 극화를 못해 첫 회부터 펑크났고 <토요극장>은 첫 방영도 하기 전에 촬영은 커녕 대사 연습조차 못 하고 아예 엎어졌다. 이들 중 <꽃피고 새울면>에 출연할 나한일은 이 드라마를 통해 멜로 스타로 변신하려 했으나 파업 때문에 늦어져 부인의 출산 및 육아에 신경써왔고, <울밑에 선 봉선화>에 출연해 온 [[김미숙(배우)|김미숙]]은 이 작품이 잠정 중단된 후 <어둔 하늘 어둔 새>를 통해 [[MBC]]로 자리를 옮겼다.[* 이 작품에서 홍이숙 역을 맡았던 [[김보연]]은 <어둔 하늘 어둔 새>에 앞서 [[KBS 2TV]] <[[꽃피고 새울면]]>에 캐스팅되었으나 작가와의 불화로 출연을 중단한 데 이어 KBS 사태까지 발생하자 <어둔 하늘 어둔 새>로 발길을 돌렸다.] 아울러 김미숙 외에도 [[전인화]], [[김희애]], [[조민수(배우)|조민수]], [[김영철(배우)|김영철]], [[최재성(배우)|최재성]] 등의 인기 배우들이 KBS 사태 후 MBC를 비롯한 다른 방송사로 자리를 옮겨야 했고, 반대로 <겨울나그네>를 통해 첫 KBS 드라마에 출연한 [[정성모]]는 이 파업으로 인해 사실상 실업자로 잠깐 전락했으며 동 드라마 주연이던 최화정은 CBS 라디오 <12시에 만납시다> MC로 열을 올리기도 했다. [[유동근]]-전인화 부부는 파업 기간 동안 연기를 못 했으나 그나마 전인화가 MBC <오늘의 요리> MC를 맡아 한숨을 돌리긴 했으며, 유동근과 같이 <파천무>에 나온 조민수는 막 개국한 불교방송의 음악 프로 MC로 연기 외적인 활동을 처음 시도했다. [[김혜수]], [[이미연(배우)|이미연]], [[손창민]], [[하희라]] 등 대학교-대학원 학생 연기자들은 학점 만회에 전념해 왔고, 특히 김혜수는 밀린 학업 겸 CF 2개 출연으로 수입을 더 올렸다. 손창민은 영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이후 드라마 주연을 거듭 맡다가 대학원 과정이 밀렸으나 파업 이후 전부 해결했지만 이 여파로 7월 예정이던 미국 연수 계획 무산을 걱정하기도 했다. 코미디언들 중 장두석(당시 KBS 희극인실장)은 당시 건강이 안 좋던 터라 전라도 지역을 배낭여행하며 피로를 풀었고, 오재미와 김진호는 밤낚시, 전유성과 김정식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인나이트클럽 출연차 해외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심형래는 파업 기간 동안 <심형래의 쫄병군단>, <별난 두 영웅> 같은 영화 겹치기 출연 등으로 바쁘게 보내기도 했다. 또 김한국은 파업 기간 중 집에서 책을 보며 개그 아이디어 구상에 전념했으며 당시 청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졸업반이던 성낙앙은 졸업을 위해 교수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학점 구걸로 바쁘기도 했다. 김미화도 그간 바빠서 못한 충치 12개 치료를 마쳤다는 등 소소한 일화들도 있었다.(이하 <조선일보>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0050800239110005&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0-05-08&officeId=00023&pageNo=10&printNo=21268&publishType=00010|1990년 5월 8일]], 10권 19호 p48~51 등지 참고.) 가요계에서는 [[조정현(가수)|조정현]]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가수로 꼽히는데,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가 골든컵을 놓치고 3주 수상에 그쳤으며[* 1주 1위 후 두달간의 파업 이후 2주 연속 1위를 했다. 즉 그 기간 동안 여전히 가장 인기있는 노래였던 셈.] 후속곡인 <슬픈 바다>도 충분히 1위할만한 노래인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흘러버려 10위권 정도에 그쳤다. KBS2의 주말 음악 프로그램 '쇼 특급'의 후속작인 '쇼 토요특급'은 1990년 3월 첫방송 예정이었으나 이 사태로 인해 방송이 연기되고 3개월 후에 첫방송되었다. 이에 따라 MC로 내정된 임하룡은 파업 기간 동안 MC 구상에 매진해야 했다. 라디오는 수도권 기준으로 [[KBS 1FM]]과 [[KBS 2FM]]이 같은 내용으로 방송되었고 지역국 음악FM에서만 하던 혼합편성을 1990년 4월 13일 오전까지 적용하다가 오후부터 진행자 없이 음악만 송출하였다. AM방송인 [[KBS 제1라디오]]와 [[KBS 제2라디오]], [[KBS 라디오서울]]도 같은 내용으로 음악만 송출하였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004130020921900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04-13&officeId=00020&pageNo=19&printNo=21087&publishType=00020|#]][* 2FM이 광고방송을 시작한 이후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 기간에 2라디오의 일부 프로그램이 결방하고 2FM의 프로그램을 릴레이한 적이 있고 [[MBC 라디오 음악여행]]으로 진행자 없이 음악만 송출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